google-site-verification=s9T4FUuBHmo3_Dg8c9qOIUHSN051xwkxICNFO4CJK1w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 건축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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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 건축 양식

by 수비아코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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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 건축 양식

철기 문화가 발달하면서 사회적 분업이 더욱 빨라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 고대 국가는 더욱 발전된 국가 형태를 띠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시대가 시작되고 부족 연맹의 단계에서 점차 왕조 국가로 체제 정비가 이루어집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고구려에서 볼 수 있는 도성 건축 양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구려 강서대묘 무덤 벽화

 

고구려의 문화적 특성

한반도 북쪽에서 막강한 힘을 키워나갔던 나라는 삼국시대의 고구려입니다. 고구려는 대외적인 정복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북쪽으로는 만주, 남쪽으로는 한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했던 국가입니다. 고구려의 부족은 용맹스럽고 씩씩한 민족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문화적인 부분에서도 강렬한 느낌을 많이 주었습니다.

 

특히 건축 문화는 통구, 평양 등의 옛 도읍지나 산성터에서 발견되는 유적, 유물, 무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성곽 축조나 도성 건설에서는 중국식 도성 기법을 들여와 지역 실정에 맞게 변형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기술적인 수준이 높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건축술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삼국인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고구려가 가장 발달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구려의 건축술은 백제와 신라 그리고 일본에까지 전해졌고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있던 삼국은 모두 중국이 아닌 고구려의 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고구려 무덤의 특징

고구려 건축과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덤 내부에 있던 벽화입니다. 이들 벽화는 지금까지도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미술 문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무덤의 벽화들을 통해서 무덤의 주인인 왕족과 귀족들의 생전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냥하는 모습, 춤추는 모습, 씨름하는 모습 등이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귀족들의 생활 모습 뿐만 아니라 노비들의 삶도 그려져 있어 전체적인 고구려의 생활 모습을 무덤 벽화를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도성 건축 특성

고구려는 한반도 남쪽과 중국 지역의 영토에 대해서 수없이 확장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따라서 변화하는 영토에 따라서 여러 번 수도가 변경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졸본 부여가 수도였고 다음으로는 국내성, 그리고 지금의 평양에 수도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수도를 옮길 때마다 이곳에 도성을 지었는데 고구려에는 많은 도성이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성의 특성

국내성은 지금의 만주 지역의 통구라는 지역에 위치한 고구려의 수도였습니다. 동서 길이가 8km, 남북 길이가 3.5km로 만들어진 고구려의 넓은 도성이었습니다. 현재 통구에 남아 있는 국내성터는 왕궁터로 알려졌으며 동서 길이가 750미터, 남북 길이가 550미터로 주변을 높은 돌로 된 벽으로 쌓았습니다. 그리고 사방에 각 각 문을 설치했고 성벽은 바닥의 넓이가 10미터, 높이가 7미터 정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커다란 돌을 사용해서 밖으로 내쌓은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평양성 도성 특징

고구려는 장수왕때 통구 지역에서 지금의 평양 부근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원래 도읍이 있던 통구 지역은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었고 남쪽으로 내려오기에도 힘든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선택한 지역이 평양성입니다. 

 

서기 586년에 지금의 평양에 장안성을 만들고 정연한 방리제를 적용하여 외성 안쪽의 평지 일대에 시가지를 만들었습니다.  구획의 크기는 150미터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중국식 도성 계획의 기법을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고구려 성터는 강과 가까운 평지에 궁궐을 짓고 관청을 만들어 비교적 소규모의 궁성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와 가까운 곳에 전쟁을 대비해서 별도의 산성을 지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고구려의 도성 건축은 거의 없어졌고 특히 대부분의 유적이 북쪽에 있어 쉽게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도성을 만들 때 일반 시가지까지 포함해서 만듭니다. 이러한 한국 성곽의 기본형을 갖추게 된 것이 고구려 시대의 도성 축조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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